부유세 폐지의 길을 선택한 국가들, 그 배경과 논란

부유세, 왜 사라지는가?

부유세는 말 그대로 개인의 순자산에 과세하는 제도로, 경제적 불평등 완화와 사회적 형평성 제고를 위한 주요 정책 도구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을 중심으로 부유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국가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세제 변화를 넘어, 글로벌 자본 이동, 국가 간 세금 경쟁, 그리고 복지국가의 재정 모델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반영합니다. 이 글에서는 부유세를 폐지하거나 유의미하게 완화한 국가들의 사례를 살펴보고, 그 배경과 함께 제기되는 논쟁을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아이콘, 부유세를 떠나보내다

스웨덴은 2007년에 부유세를 폐지한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높은 복지와 사회적 평등으로 유명한 국가가 부유세를 포기한 결정은 당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폐지의 직접적인 계기는 세금 회피와 자본 유출이었습니다. 고소득층과 기업가들의 자산이 세금 부담을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오히려 국가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한 은퇴자의 인터뷰에서 "예전엔 이렇게 쉽게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부유세 폐지는 글로벌화 시대에 맞춰 경제를 재편하고 자본을 붙잡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 결정 이후 스웨덴은 소득세와 소비세를 중심으로 한 재정 모델로 전환하며 경제 성장을 유지했지만, 사회 내 부의 불평등이 확대되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석유 부국, 선택과 집중의 결과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보유한 노르웨이는 2014년에 부유세를 사실상 폐지했습니다. 막대한 석유 수익으로 조성된 펀드 덕분에 다른 국가들보다 재정적 여유가 있었고, 이 자원을 바탕으로 세제를 재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부유세보다는 석유, 해운, 어업 등 주요 산업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와 펀드 수익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정책적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는 "우리가 어디로 가게 될 지, 또 어디로 가야 할 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겠죠"라는 말처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상속세도 이미 2014년에 폐지한 노르웨이는 자본 유출 방지와 국제 경쟁력 강화를 우선시한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프랑스: 뜨거운 논쟁 속에서의 폐지

프랑스는 2017년 '연대사회세(ISF)'라는 이름의 부유세를 자산세에서 부동산세로 전환하는 형태로 사실상 폐지했습니다. 이 결정은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이었으며, 국내 투자를 촉진하고 프랑스를 "창업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정은 프랑스 사회 내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급증한 국가부채와 높은 일반 세율 속에서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줄이는 것이 정의롭지 않다는 비판이 강력했습니다. 총선에서도 주요 이슈로 떠올랐으나, 결과적으로 폐지 정책이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복지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경제 활성화 사이에서 프랑스가 내린 고민의 결정이었습니다.

부유세 폐지 국가 비교 및 주요 논점

국가 폐지 시기 주요 배경 및 이유 폐지 후 강화된 세원/정책
스웨덴 2007년 자본 유출 및 세금 회피 방지, 경제 활성화 소득세, 소비세(VAT), 환경세
노르웨이 2014년 (실질적) 석유 수익 기반 재정 여유, 국제 경쟁력 유지 석유 관련 세금, 국부펀드 운영, 소득세
프랑스 2017년 (형태 전환) 국내 투자 촉진, 창업 활성화, 자본 유출 방지 부동산세(IFI), 금융소득세, 디지털 서비스세

폐지 반대론: 토마 피케티의 경고

부유세 폐지 흐름에 대해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강력한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는 "부유세 폐지는 도덕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엄청난 실수다"라고 단언합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리에 기반합니다.

  • 불평등 심화: 부유세는 상속을 통한 세습 자본주의를 통제하는 핵심 장치로, 그 부재는 부의 대물림을 가속화해 사회적 이동성을 저해합니다.
  • 재정적 형평성 훼손: 노동 소득에 대한 세금은 여전히 높은 반면, 자본 소득에 대한 과세가 약화되면 서민층의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긴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역사적 교훈: 피케티는 역사적으로 진보적 과세가 민주주의와 사회 통합의 기반이었다고 보며, 이를 포기하는 것은 퇴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국가정체성을 내세우는 포퓰리즘이 서민의 소외감을 이용해 불평등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하며, 오히려 글로벌 차원의 자산세 협력(예: 글로벌 최소 부유세)을 주장합니다.

대안 모색: '폐지'가 아닌 '리모델링'

흥미로운 점은, 많은 유럽 국가들이 단순한 '폐지'보다는 세제의 '리모델링'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속세 폐지 대신 면제 한도를 현실화하거나, 특정 자산(예: 주거용 부동산, 중소기업 주식)에 대한 비과세 항목을 설계하는 등 정교한 개편을 시도합니다. 이는 "국가가 세금을 쉽게 없애진 않겠구나"라는 인식을 주며, 세제가 단순한 재정 수단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경제 구조를 반영하는 정교한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핵심 목표는 자본의 국제적 이동성을 고려하면서도, 사회 내 형평성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습니다.

결론: 한국에 던지는 질문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의 사례는 각국이 처한 독특한 경제적, 사회적 맥락에서 나온 선택이었습니다. 공통점은 글로벌 자본 이동과 국가 간 세금 경쟁이라는 압력 앞에서 기존의 부유세 모델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인식입니다. 그러나 피케티의 경고처럼, 이로 인한 불평등 심화와 사회적 균열의 위험은 여전히 유효한 문제입니다.

한국은 상속·증여세와 종합부동산세(일종의 부유세 성격)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타국의 사례를 볼 때, 단순한 '폐지' 또는 '유지'의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 한국의 경제 구조와 자본 이동성은 어느 수준인가?
  • 부유세 또는 유사 세목의 경제적 효과(투자 위축 vs. 형평성 제고)에 대한 실증적 분석은 충분한가?
  • 부유세의 재정 기여도 대신, 소득세·소비세·법인세 등 다른 세원과의 조화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사회'의 모습은 무엇이며, 세제는 그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부유세 논란은 결국 한 사회가 '부'를 어떻게 바라보고, 그 부가 창출하는 가치를 어떻게 공정하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다른 국가들의 선택은 참고 자료일 뿐, 한국만의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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